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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비목이라는 단어의 의미....
jjang80621 작성일 : 2006-06-13
조회 : 4515 답변 : 1

류시화씨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를 보면...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비목이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자귀밥이라 하여...
톱으로 나무를 자르면 생기는 것이 톱밥이듯,
나무조각을 할때 사용하는 자귀라는 도구로 나무를 깍아서 생긴것이
자귀밥이고, 그것이 비목인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비목이라는 노래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에서는
그러한 의미로 해석을 하자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Answer
비목이라는 단어의 의미....
admin 작성일 : 2006-06-13
현재 추천 : 0

비목(比目)은 당나라 시인 노조린의 시에 나오는 물고기라고 많이들 알고 있지요.(자귀밥을 뜻하는 비목飛木이 아니랍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목어(比目魚)입니다.
국어 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비목어는 넙치이구요.(좀 깬다..-_-;;)
넙치는 눈이 두 개인데 왜 외눈박이 물고기라고 했을까..
하지만 류시화 시에 나온 비목이 비목어(넙치)를 뜻한다고 단정지을순 없겠지요.
그렇지만 그가 노조린의 시에 나온 비목을 가져온 것이니 노조린 시에서 비목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다음은 오래 전에 창비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데요.
의견이 분분합니다.
길지만 한 번 읽어보세요..

글쓴이:WELLUP /99/05/08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시인 류시화를 아는 모든 이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의 시로 매김된 좋은 시임에 틀림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시에 나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에 대해서는 그 인용에 있어 '틀림이 있어' 오늘 그 누명을 벗겨주지 않을 수 없기에 한자 적는다. 시인은 주석을 달아 『*비목( 比目 )-당나라 시인 노조린의 시에 나오는 물고기』라고 친절히 안내 하고 있으나 누구라도 국어사전을 잠시만 펼쳐보면 굳이 죽고 없는 당나라 시인 노조린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목어(比目魚)'가 '넙치'를 뜻하는 단어 임을 쉽사리 알수 있다.
잘 아시다 시피 넙치는 가자미과의 바닷 물고기로서 두 눈이 모두 왼쪽 머리 부분에 쏠려있다. 따라서 비목 내지는 비목어라는 단어의 해석은, '편눈박이', 혹은 '짝눈박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눈'에 중점을 두어 했어야 옳으나 어쩐일인지 시인 류시화는 흔한 국어사전 조차 찾아보지 않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는 생각이다.
내게 '비목어'라는 단어가 생소했듯이 류시화도 그랬으리라는 생각이지만 오늘날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중량감에 비추어 '넙치'를 진정한 이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일이 시적감흥을 반감 시키는 일이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잘못된 인용을 바로 잡을 수는 있을것이다.
내가 만약 외눈박이 물고기라면,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위해 평생을 붙어' 다녀 평생 임구경 한번 못할 것이 아니라, 그 하나 있는 눈을 임에게 돌려, 그나마 그윽하게 서로를 바라볼 것이기에...


류시화님의 시에 나온 '비목'에 대한 웰업님의 지적은 정확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지적이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부정확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목'이 반드시 넙치인 '비목어'를 가르킨다는 정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비목'이 비목어를 가르킨다면 당나라 시인도 류시화님도 그 '비목'을 비목어라고 지칭했어야만 한다. 또한 더 따져볼 일은 당나라 시인이 과연 현재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비목어가 넙치라는 의미를 알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대답은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비목어라는 단어가 당나라 당시에 비목과 같은 뜻으로 쓰였는가를 반드시 따져보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옛날에 쓰였던 단어와 지금 쓰고 있는 단어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는 예는 아주 많다. 흔한 예로 '어여쁘다'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이 말은 우리 시대와 그리 멀지 않았던(?) 조선조에는 '불쌍하다'란 말로 쓰였다.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불쌍하다'라고 해보라. 당장에 절교선언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 여자친구에게 '어여쁘다'라고 자주 쓰고 있다. 이것이 언어의 시대성이다.
57년생인 안재찬이 류시화라는 이름으로 시를 쓰고 있다면 극서은 그의 세계고, 그의 문학세계이다. 그리고 그 독자들도 그의 문학세계를 보면서 독자들 나름대로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그러면 그의 문학세계에서 과연 왜 류시화님이 '비목'이란 단어를 썼는지 생각해보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인 노조린이 왜 비목이란 단어를 사용했는지 따져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목(目)이란 한자는 자명하니 생략한다. 비(比)란 한자의 의미에는 '화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 비목을 다시 풀어 말한다면 '화해야만 눈이된다' 즉'합해야만 볼 수 있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당나라 시인 노조린이 이 글자를 쓴 것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산해경에 나오는 비익조를 생각하고 시인적인 상상으로 그와 동류인 어류를 생각해서 이런 단어를 쓰지 않았나 한다. 비익조는 '만만'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서, 날개가 하나만 있는 새이다.
그러니 날기 위해서 합(比)해질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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